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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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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와 TV 생산 시작

라디오 생산은 우리나라 전자공업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금성사는 1958년 회사를 세우면서 라디오 생산을 준비해 오다가 1년쯤 후에 ‘A-501’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 라디오였다.
A-501는 처음 80만 대 정도를 생산했는데 가격은 2만 환 정도였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이 1만 8,000환이었고, 비슷한 외국산 라디오는 3만 3,000환 정도였다.

최초의 국산 라디오국내 생산이 불가능했던 이 시기에 우리나라 기술자들은 국산 라디오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 진공관•스피커•레지스터•더스터 코어•볼륨 컨트롤 같은 부품은 수입했지만 전원 스위치•섀시•트랜스•스크류•너트•플레이트•전원 소켓 등은 우리 힘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처음 만든 라디오였음에도 불구하고 부품 가운데 미제와 서독제는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되었다. 60%를 넘는 부품이 국산이었다.

한편, 1963년 무렵부터는 TV 생산도 추진되게 되었다. 1961년 12월 국영 KBS TV가 개국한 지 1년여 뒤다. 당시 정부는 TV 수상기 보급을 확대해 경제개발계획을 홍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금성사에 TV 생산을 권고했다.
이때까지 국내엔 미국·일본에서 수입된 TV만 유통됐다. 금성사는 1963년 일본 히타치제작소에 기술연수팀을 파견하고 생산시설을 도입하는 등 TV 생산 계획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무렵 TV 생산에 대한 국내 여론은 최악이었다. 차관을 통한 외환 유입으로 환율이 치솟은 데다 전력 사정도 좋지 못한 상황에서, 다시 차관을 끌어들여 TV 부품을 수입하는 데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컸다.

우여곡절 끝에 1965년 말, 금성사는 'TV 부품 도입에 소요되는 외화는 라디오를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활용한다'는 등의 조건으로 부품 수입 허가를 얻어냈다. 그리고 1966년 8월, 마침내 국내 최초의 흑백 TV 'VD-191' 500대가 만들어졌다.

최초의 국산 TV48㎝(19인치)짜리 흑백 TV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가격이 6만원으로 쌀 27가마 값에 달했지만 '최초의 국산 TV'는 공개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에게만 팔았을 정도로 인기였다.
금성사는 월 생산능력을 1500대로 늘렸고, 1966년 말까지 1만대를 생산했다. 당시 국내 TV 보급대수는 미국·일본제를 중심으로 10만대였는데, 금성 TV가 생산 5개월 만에 전체 보급 대수의 10%를 차지한 것이다.
이 무렵 정부는 전자공업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라이벌' 삼성전자는 1970년 일본의 산요와 합작으로 흑백TV를 생산했고, 1972년에는 독자적으로 흑백TV 생산에 성공했다. 3년 뒤 삼성전자는 예열이 필요없는 '이코노TV'를 시장에 내놔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으며 금성사와 본격적인 경쟁 구도를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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